5/29/2017

VIE-DEO #50

Photo Credit : JiSun LEE / 2017.05.19 / Paris

2011년부터 비디오를 만들고 있다
1-2학년때 B교수의 과제로 만들어본 두작품은 비디오그래피에서 제외하고 있다
3학년때 1 남짓한 자그마한 사람모양이 움직이는 애니메이션에서 시작했다
표정없는 학생이 말없이 만들어 가던 비디오에 조금씩 생명이 생겨났다.
초창기 비디오로 빠져드는 나를 가만히 지켜봐준 B학사지도교수와 하나씩 창문을 열어갈수 있게 이끌어준 C석사지도교수는 고맙고 멋진 할아버지들이였다
졸업한 이후로도 작은 영상들이 하나씩 이어졌다.
누가 지원해 주지도 제작해주지도 않고, 만들라고 시키지도 않고, 만들어서 돈이 되지도 않았다
그런데 자꾸 아이디어가 비디오의 형태로 나오고, 아이디어가 모이면 만들고, 만들면 두근거리고 그랬다
졸업하자 마자 올라온 파리에서의 작가생활을 바로 시작하게 해준것도 결국 비디오였다.

2015년부터 직접 촬영한 영상들로 비디오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때 그때 1분만큼씩 찍어둔 조각이 많아지나보니 작업으로 모으지 않을수가 없었다.
작업을 위해서 머나먼 촬영을 떠나진 못하지만 언제든 재료가 장면들을 남겨두려고 많이 멈춰가며 다녔다.
애니메이션과 다르게 편집이 금방 끝나지만 소스에 흠이 있으면 사용하기가 어려웠다
촬영버튼을 누르자마자 원하지 않는 수많은 움직임과 소리까지 담는 영상이 부담스러웠는데 지금은 거의 사진만큼 좋아졌다
그러다 보니 점점 화질에 욕심이 나고 구도에 겉멋이 들고 그랬다.
학교 초반에 작업하던 사진들이 그랬다.
그림과 다르게 사진은 찰칵 하는순간 배경에 주인공까지 모두 담겨 버려서 그걸 감당하질 못했다.
최대한 희거나 검은 비어있는 배경에 촬영을 하고, 아니면 그냥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다시 그림으로 그려서 것들을 뺐다.
그런데 사진의 속도는 그림과는 비교할 수가 없었다.
자리에 멈춰서 한두시간 그림으로 스케치하는 대신 우선 사진부터 찍고, 날이 지나기 전에 날짜대로 정리를 하고, 베스트를 표시해 정리해두고 그랬다.
그렇게 사진과 많이 가까워졌다.
너무 일상적이고 쉬운 접근이여서 사진을 작업처럼 여기고 전시할 생각도 못했다.
때때로 한계를 만나지만 작은 똑딱이로 해결했할 있었다.

영상은 그런 점에 더해서 시간에 대한 개념이 어마어마 확장된다.
비디오는 시간을 기반으로 하는 미디어이다.
1초가 25칸으로 나눠지는건 당연하고, 컴퓨터에서의 작업도 훨씬 더디고 오래걸린다
지금의 맥북은 거의 소리를 내지 않지만 전에 지나간 노트북 두가지는 비디오 작업에 하염없이 열을 냈다. 몇시간에 걸쳐 렌더링을 하다가 열받아 꺼지면 모든게 다시 시작. 옆에서 완성의 경쾌한 소리가 울릴때까지 노트북에 부채질을 해대고 얼음팩을 대고 그랬다.
비디오의 역사는 기술의 발전과 함께 간다. 그런데 기술을 갖춘다고 좋은 작업이 되진 않는다
그래도 기술이 있으면 있어보이게는 나온다.
상상하는 모든 것을 만들 있다는 편집 프로그램들은 동시에 내가 쓸줄 아는만큼만 상상하게 제한하기도 한다.
0 시간인 비디오는 없다
동시에 어떤 비디오도 플레이되지 않는 동안에는 0 시간에 갇힌다.

2년정도 전부터 멀티미디어 작가라고 소개한다.
비디오, 뎃상, 사진, 오브제를 건드리고 있다보니 타이틀이 자꾸 길어졌었는데, 영어로도 불어로도 한글로도 똑같은 표현, 간단 명료하게 되었다.
모든것들을 단어의 주제로 말하라고 하면 조금 머뭇거리지만 결과적으로는 내가 주제였다.
아이’, 목소리, 본것과 읽은것, 남겨진 장면들과 잊으려는 것들, 지나온 얼굴들과 그려진 형태들이 모든것의 기본 재료들이다.
나에서 삶과 세상으로 뻗어나가려고 애쓰고 있다.
아직은 댓가 없이 부탁한 일이 대부분이지만 최근에는 적정한 댓가를 조건으로 의뢰일도 있었다.
주인을 찾아간 작은 드로잉 몇점도 응원의 손길로 충분했고, 함께 나이들어 가는 선생님의 초상화 일도 좋았고, 군더더기 없이 지나간 비디오 작업도 괜찮았다.
어제 오늘 먹은 밥값이 아직 작업에서 나오지는 못하지만 작년에 비해서 아주 조금의 발전이다.

나는 12시를 넘겨서는 공부도 일도 못한다.
요즘에는 이틀정도를 거의 못자고 하루를 쓰려져 몰아 자는 경우가 생긴다.
다행인건 몇시에 잠들던 아침 그시간에는 눈이 떠진다.
아침은 내게 매일같이 주어지는 굉장한 시간이다.
글자 그대로 지금 나의 모든것을 쏟아부은 50번째 비디오의 이미지가 완성됐다
엔딩크레딧을 넣지 않은 상태에서 5 55.
제목은 Horizon 혹은 HORiZON
거창하게 얘기하는 것에 비해서 그냥 나의 다른 새로운 작품이다.
오랜만에 ‘i’시리즈, 다시 흑백이고 다시 애니메이션이다.
내일 음악을 만들꺼다.

작품이 완성되면 이제 비디오그래피는 50개의 영상으로 채워진다.
만든순서로 1번은 « i : alone »
오빠작품에 삽입영상이라던지, 최근 넘겨준 의뢰일은 제외.
50개에는 i 시리즈를 시작으로 쓰이거나 쓰이지 않은 전시나 페스티발의 티저도 있고, 조카의 탄생을 위한 축하선물, 가장 많은 플레이 수를 기록한 사이트 메인화면 영상, 음악가의 의뢰로 만든 영상과 음악공연을 위해 다시 손본 영상, 석사논문을 비디오화해본 영상, 목소리와 언어가 다른 영상, 몇명의 수집가의 책장정도에 담겨있을 영상과 퀘백 배급사의 로고를 달게된 영상, 그리고 등등이 있다.
여러 전시에서 소개된 것과, 나보다 많은 대륙을 가본 , 한번도 빛을 보지 못한 , 지금 보면 부끄러운 , 오랜만에 보니 좋은 것들.
작년과 올해는 작은 스케치와 비디오를 하염없이 만들었다.
한순간도 중에 하나라도 쉰적이 없다
그냥의 것들을 만들고 싶지 않다.

파리에 돌아오자마자 밀린 과제처럼 해야할 작업이 쌓였다.
가만히 두면 좋아서 작업이 나를 밀치니까 힘들었다.
당연히 누리던 잠시 걸으러 나가는 시간도, 커피 한잔 마시러 나가는 시간도 아까울만큼시간 달렸다.
갯수와 분량이 정해진 일이다 보니 그랬다.
무엇을 위해서 뭐하려고 이러고 있는지 모르겠었다.
도대체 왜인지 헷갈렸었다.
그러다가 어느날 잠결에 정신이 조금 들었다.
내년까지만 약속된 일들을 위해 달리고 쉼표를 찍어야겠다.

몇일전 기역자로 유지했던 책상 구조를 바꿨다.
계속 자리를 못잡고 비켜있던 키보드가 오른편에 자리를 잡았다.
카메라와 모니터, 장비는 늘어간다. 그냥 늘어만 가는게 아니고 머리가 윙윙거리게 돌아가고, 낡은듯 고장났다가 살아나고, 버릴만큼 느려지고 그런다
6월은 시작하자마자 오랜 친구도 오고, 친구가 가면 오빠가 오고, 오빠가 가면 지인이 들르고, 지인이 가면 반가운 친구도 온다.
다가오는 일정을 생각하니 작업시간을 어떻게 확보하다가 걱정이었다
근데 아마 그들이 물을 주고 갈것 같다.
내일은 음악을 만들고 잠시만 숨을 쉬고 와야겠다.

유사화효가행.